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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말과 글, 관계

<유시민의 공감 필법>을 읽고

Student9725 2018. 8. 14. 09:08

2017년 9월 30일 제가 페이스북에 남겼던 서평입니다.


최근 강원국 교수의 강연에서 말을 통해 공감하는 강연이 좋다고 들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유시민 작가는 소통하는 글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책의 처음 부분에서 작가 본인이 요약한 책의 핵심 내용은 이렇다.


책을 읽을 때는 글쓴이가 텍스트에 담아둔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껴야 한다. 그럼 풍부한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다. 간접체험을 제대로 해야 책 읽기가 공부가 된다. 그리고 남이 쓴 글에 깊게 감정 이입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가상의 독자에게 감정을 이입하면서 글을 쓸 수 있다. 자기 생각과 감정 가운데 타인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것을 골라낼 수 있고, 그것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식으로 쓰게 된다.


‘공감하는 독서를 해야 공감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다.’ 강연의 내용과 많이 비슷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공감하는 독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작가는 다양한 책을 독서하며, 공감한 경험을 말한다.


[책의 내용]


1. 독서, 공부, 글쓰기


카톡, 페북, 블로그에서 취미로 글을 쓰는 시민을 독자로 설정했다. 문장을 잘 쓰는 기술보다 감정과 생각을 문자 텍스트로 표현해서 타인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유시민이 생각하는 공부란? 인간, 사회, 생명, 우주를 이해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는 작업이다. 독서는 가장 효과가 빠른 공부방법이다. 글쓰기란 ‘생각과 감정을 문자로 표현하는 행위’다. 공부는 독서와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과정이다.


2. 정체성 : 유발하라리, [사피엔스]


지식과 정보를 얻는 것보다는 글쓴이의 생각과 감정을 텍스트에 담긴 그대로 이해하는데 초점을 두고 책 읽을 읽어보면 어떨까?


사피엔스의 속표지에 쓰인 문구를 보자. 
“From one Sapiens to another” 어떤 느낌이 오는가?


‘사피엔스’라는 단어를 쓴 것은 인간이 지구행성에 존재하는 여러 종의 생물 가운데 하나고, 하라리 자신도 사피엔스 중 한 개체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문구에 적힌 말은 하라리의 자아정체성을 보여준다.


하라리가 ‘일본인이 일본인에게’ 또는 ‘한국인이 한국인에게’ 라고 적었다면 민족적 동질감을 느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민족은 상대적으로 배척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라리는 피부색이나 외모, 국적, 문화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적대감을 덜 느끼거나 강한 유대감을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From one Sapiens to another”라는 문구엔 하라리만의 의미가 담겨있다.


사실 우리 삶은 우리 자신만이 부여하는 의미 말고는 아무 의미가 없다. 모두에게, 객관적으로 공통의 의미가 있는 것은 찾기 힘들다. 스스로 자기 인생을 설계하고 의미 있는 삶의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이 책을 보며 작가는 싸우거나 죽일 듯 미워하는 이유가 대부분 지극히 사소한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상과 사람과 인생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가 달라지는 순간을 체험할 때는 성장할 수 밖에..


3. 감정 :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코스모스 7장의 내용 중 감명 받은 대목

나이가 어느 정도 들자, 부모님은 내게 처음으로 도서관 카드를 건네주셨다. 그 도서관은 85번가에 있었던 것 같다. 아, 그곳은 정녕 새로운 세계였다. 난 곧장 사서에게 달려가서 “스타들”(stars)에 관한 책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녀는 클라크 게이블(Clark Gable), 진 할로(Jean Harlow)와 같은 남녀의 사진이 담긴 그림책을 가져왔다. 나는 그런 책이 아니라고 했다. (...)
그러자 그녀는 웃음을 짓고 다른 책을 하나 찾아다주었다. 내가 원했던 바로 그 책을 말이다. 내가 원하던 깊이 있는 답을 찾을 때까지 나는 숨을 죽이며 그 책을 읽어내려갔다. 그 책에는 깜짝 놀랄 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그 책은 참으로 장대한 세상에 관한 생각들로 가득했다.

칼 세이건의 생애는 공부가 무엇인지, 공부와 삶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보여준다. ‘별은 무엇일까?’ 그는 누구나 한번쯤 품어보는 이 단순한 질문을 파고든 결과 과학자가 되었다.

과학책을 읽을 때는 과학 사실과 정보를 습득하는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 글쓴이가 정보를 손에 넣었을 때 느꼈을, 그것을 서술하면서 텍스트에 담으려 했던 감정을 함께 읽어내야 재밌다.


비판적으로 텍스트를 독해하려면 먼저 글쓴이에게 감정을 이입해야 한다. 작가의 경험으로 많은 비판 중 감정을 이입해서 말과 글과 행동을 분석하고, 그 토대위에서 비판하는 글은 많지 않다. 많은 비평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에만 빠져서 남의 텍스트를 멋대로 난도질하곤 한다.


타인의 글을 읽으며 공감할 능력이 없다면, 타인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없다.


4. 공감 : 신영복과 창신꼬마 이야기


신영복 선생의 에세이에는 ‘떡신자 이야기’가 있다.


떡신자란 모든 위문품이 있는 종교 집회에 빠짐없이 나타나는 사람이다. 화요일 기독교, 수요일 천주교, 목요일 불교 등 종교 집회가 열릴 때 바깥 신도들이 위문품을 가지고 방문한다는 소문이 돌면, 위문품 때문에 너도나도 참석하려 한다. 집회 참석은 신자 명단에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다.


선생의 라이벌 떡신자 한 사람이 있다. 선생이 가는 종교 집회마다 어김없이 와있다. 창신동에서 자랐다 해서 창신 꼬마라 불렀다.


서로 신호를 보내는데 ‘보루박스’안 빵 봉지가 몇 개인지, 여기 참석한 사람이 몇 명인지 계산한다. 빵 개수가 적어보이면 줄 앞쪽에서 먼저 받고, 빵이 남을 듯하면 뒤로 쳐져서 나중에 받는다. 남는 경우엔 뒤에 있는 사람에게 두 개씩 주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이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뭘까? 선생은 자기변화가 인간관계의 변화를 통해 완성된다고 보았다. 재소자들과 맺고 있던 인간관계의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신뢰를 쌓는 과정에서 ‘떡신자’를 자처했다.


선생의 글에는 개별적 경험을 통로로 스스로를 변화시키려면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보편적 결론이 많다. 이 경우에는 ‘떡신자’ 경험이다. 이 글쓰기 방법은 배워두면 좋다고 한다.


유시민 작가는 신영복 선생이 아니라 창신꼬마에게 감정을 이입했다. 군 훈련병 시절의 부족한 허기를 채우기 위해 눈치를 본 추억을 떠올렸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에 젖어보고 공감을 해보면, 나중에 쓸 말과 글이 다른 사람에게 공감을 얼마나 얻을지 가늠할 수 있다.


5. 태도 : 굴원의 [어부사]


세상과 나를 대하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을 정할 때, 독서를 통해 얻은 정보와 지식, 감정을 활용한다.

유 작가가 어린 시절 읽은 위인전이나 박정희의 국민교육헌장 등 전체주의적 경험이 ‘대한민국은 민주국가가 되어야 하고, 민족중흥을 이루겠다는 사명’과 민주화 투쟁으로 이어졌다.


작가가 몸담았던 정부가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정권이 교체되었다. 국회의원 선거에는 떨어지고, 모시던 대통령은 돌아가셨다. 좌절감에 빠졌다.


뭔가 잘못 됬다는 생각이 들었다. 굴원의 [어부사]는 ‘이렇게 사는 건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다르게 사는 건 안 될까?’ 고민할 때 도움을 주었다.


굴원은 백성과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했으나, 억울하게 삭탈관직당하고 죽으러가는 길에 [어부사]를 남겼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


세상을 탓하지 말고 세상에 맞춰 살라는 뜻이다.


‘흙탕물에서는 발을 씻으면 되지, 굳이 세수를 하며 비관할 필요 없다. 세상에 맞추어 사는 것도 인생이다. 대중이 원하면 정치를 하고, 원하지 않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겠구나. 3번이나 낙선했으니 원하지 않는게 확실하구나. ’ 작가는 이 생각으로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6. 격려 : [맹자]와 [유한계급론]


맹자는 “뜻을 얻었을 때는 백성과 함께 가고, 그렇지 못하면 홀로 그 길을 간다”고 했다. 
작가는 이 글을 보고 ‘그래, 뜻을 얻었을 때는 시민과 함께 정치의 길을 갔다. 이제 그렇지 않으니 나 홀로 내 길을 가자’고 스스로 격려했다.


[유한계급론]은 베블런이라는 괴짜 경제학자가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주의에 사로잡히는 이유를 설명한 글이다. 8장에 나오는 일부 내용이다.


보수주의는 상층계급의 특징이기 떄문에 품위가 있는 반면, 혁신은 하층계급의 현상이기 떄문에 저속하다.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사회적 혁신을 외면하게 만드는 그 본능적 반발과 비난의 가장 단순한 요소는 사물의 본질적 비속성에 대한 이 관념인 것이다.


유시민은 보건복지부에서 일할 때의 경험을 떠올린다. 노인 장기요양보험과 기초연금을 도입해 노인복지정책을 확충하는데 힘을 썻다. 그러나 이 정책의 수혜자들은 장관일 때 그들로부터 지지받지 못했다. 섭섭하고, 답답하고, 좌절했다. 이후 이 대목을 보고 섭섭한 마음과 책임감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독서 후 내 생각]


작가는 책의 초반부에서 공부는 단순히 지식을 얻는 작업이 아니라, 오감으로 체험하는 것이라 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아니 체험을 위해 공부를 한다고 생각한다. 책 속의 지식은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의사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지만, 통계학 전공자는 모든 의사결정의 구조적 문제를 이해하고 판단한다. 전공서에서 이해하는 작업은 조사나 실험, 확률모형이다. 판단은 귀무가설을 기각할지말지 결정하는 가설검정이다.


최근에 핫한 책그림의 영상처럼, 확률모형을 세우는 것과 판단하는 작업은 모두 주관적으로 이루어진다. 주관적인 판단을 객관적인 현상에 사용하려면 설득해야 한다.


책그림 영상 링크 : 알고리즘은 주관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SS-7Q_SRU2s&feature=share


어떤 설득이 효율적일까??


뇌과학과 심리학의 최신 연구들.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과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은 설득력에 대해 힌트를 준다. 우리의 직관과 감정은 이성보다 앞선다. 감정이 먼저 작동되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방향성이 나오고, 이후 감정에 따라 만들어진 결론을 이성으로 설명한다.


이 연구들에 따르면, 의사결정을 잘 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가장 좋은 설득 방법은 공감할 수 있는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고등학교 때 수학 공부하던 추억을 떠올려보자. 수학 개념서의 한 단원 당 구성은 보통 3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개념이 나오고 예제와 연습문제가 나온다. 개념은 수학적 이론을 보여주고, 그 개념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설명한다. 예제는 그 개념이 적용되는 방식을 예를 들어보여주는 문제다.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여주고 문제해결의 방향을 제시한다. 연습문제는 개념과 예제에서 보았던 방향성을 이용해 실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연습이다.


강원국 교수의 강연이 개념의 덩어리였다면, 이 책은 예제의 묶음이다. 이 책을 읽으며 공감하는 글쓰기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명확해졌다. 공감하는 글을 쓰려면, 내가 먼저 공감하는 독서를 해야 한다. 유시민 작가는 5개의 예시를 통해 공감하는 독서를 보여주었다.


글이 구어체라 친근감이 있었고, 분량도 150쪽 밖에 안 되어 쉽게 읽혔다. 공감을 안할래도 안 할 수가 없는 글이었다. 공감하는 글쓰기도 책 전체로 보여준 셈이다.


공감하는 독서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 유시민 작가의 글을 좋아하며 저렇게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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